어릿광대가 오랜만에 소금기를 털고 항구를 벗어났다. 도착한 곳은 허름한 촌구석이었다. 마을 입구에 있던 세관원은 어릿광대의 차림새를 아래 위로 훑어보고는 거드름을 피우듯이 입을 열었다.
"이봐, 도적질은 좀 더 나은 곳에서 하지 그래? 여긴 가진거라고 전통 밖에 없는 촌이라고."
어릿광대는 우스꽝스런 표정을 지으며 세관원에게 아양을 떨듯이 말했다.
"헤헤. 산 좋고 공기 좋다해서 휴식도 할겸 강간차 놀러온겁니다."
일부러인지 발음이 좋지않아서인지 강간이라는 단어가 세관원의 귀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도적이 아니라 돈을 쓰러 온 사람이라는 사실에 태도를 바꾸어 환영하기 시작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어릿광대가 멀찌감치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세관원은 고개를 숙여 깍듯이 인사를 했다.
어릿광대가 이 곳에 들른건 오랜된 악우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였다. 남편을 일찍 잃은 과부가 달아오른 몸을 주체하지못하고 풀어헤진 옷가지마냥 산발한 머리카락이 어릿광대의 눈에 보였다.
"광대, 여길세."
봉두난발한 남자의 정체는 어릿광대의 친구인 망나니였다. 망나니는 어릿광대를 보자 반가운 얼굴로 맞이해주었다. 헌데 그의 손에는 두 개의 목줄이 있었다. 조그마한 개새끼 한마리와 그보다는 조금 크지만 뼛가죽 밖에 남지않은 개가 있었다.
"그 개들은 무언가? 오늘 점심 식단인가? 둘 다 끓여도 한 그릇이 안나오겠구먼."
어릿광대의 말에 망나니는 그런게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에 마을에 돌아다니던걸 데려와 키우고 있다네. 그리고 요놈은 개가 아니라 이리일세."
망나니의 말을 다시 듣고 본 뼛가죽이 앙상했던 개는 확실히 사나운 이를 보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키우고 있는거라는 망나니의 말에 어릿광대는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럼 오랜만에 만났으니 우선 요기나 합세."
망나니의 안내를 받아 어릿광대는 근처 주막으로 몸을 뉘였다. 웬 사내가 장사를 하는 허름하고 볼품없는 주막이었다. 주모가 없어서 농으로 엉덩이를 치는 재미도 없겠다고 어릿광대가 생각하는 사이에 주문한 식사가 나왔다.
"아니, 이게 무언가?"
고기를 주문했을터인데 내다놓은 접시에는 두꺼운 떡이 있었다.
"자네가 떡을 좋아하는 것은 익히들어 알지만 밥마저 떡으로 먹을 참인가? 허리끈을 맬 틈이 없겠구먼."
어릿광대의 말에 망나니는 지레짐작하지말라는 듯이 말했다.
"사실 이게 고기일세. 여기가 보기에는 이래도 요 큼직한 고기로 연일 만석이라네."
망나니가 제일 큼직한 놈을 들어 불판에 올리니 그의 말처럼 지글거리며 고기 익는 내음이 났다. 그 냄새에 데려왔던 짐승들도 허기가 도는지 식탁으로 고개를 삐죽이 내밀었다.
"어허 놈들 하고는."
망나니는 가볍게 질타를 하며 먼저 구운 고기를 던져주었다. 그제서야 떨어진 고기로 관심을 돌리고 식탁에서 주둥이를 치워주었다. 적당히 익은 고기를 한 점 한 점 집어 먹으니 그 두께만큼이나 향긋한 육수가 입안을 적셨다. 배가 어느정도 부르자 망나니는 들고있던 목줄을 풀었다.
"자네 뭐하는 짓인가. 그러다 도망이라도 가서 행인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어릿광대의 걱정섞인 말에도 망나니는 걱정말라는 듯이 손사레를 쳤다.
"요놈이 교육이 잘되서 그런 일은 없네. 지가 알아서 집까지도 찾아갈걸세."
망나니의 말처럼 이리는 주변사람은 신경도 쓰지않고 유유히 장터를 빠져나갔다. 그 모습이 신기한 듯이 쳐다보는데 옆에있던 개새끼는 주워먹던 고기가 얹혔던지 다시 게워놓고 있었다. 망나니는 그게 안쓰러웠던지 불판 위에 있던 고기 몇 점을 입에 넣어 씹더니 바닥으로 뱉었다. 개새끼는 그제서야 잘게씹어 뱉은 고기를 먹었다. 하지만 개새끼는 배가 불러도 돌아가지 않았다.
"내 소개시켜줄 사람이 하나 있네만 술이라도 하면서 기다리지."
망나니의 말에 어릿광대는 다시 자리를 옮겨 주점을 찾았다.
"어허, 거참. 이리도 좋은 자리가 없던가."
어찌된 일인지 안내를 하던 망나니는 발길이 쉬이 띠어지지않았다.
"내 익히 이 곳의 주점들을 자주 다녔네만 요 얼마간 거리가 많이도 변했나보네."
하지만 계속 길바닥에 있을 수 없어서 근처의 조그마한 주점으로 들어갔다. 주인장이 반갑게 둘을 맞이해 자리를 내주었다.
"주인장, 여기 맛있게 담근 J&B 하나 주시오."
망나니의 말에 주인장은 얼른 큰 사발에 술을 퍼왔다. 사발에서 찰랑거리는 술이 넘쳐 바닥에 뿌려지니 망나니의 발 밑에 있던 개새끼가 얼른 가서 할짝였다. 그 모습이 재미있던 어릿광대는 계속 술을 바닥에 뿌려보았다. 이 자리 저 자리 옮겨다니며 떨어진 술을 핥는 개새끼의 모습이 마치 여름철 외양간에서 보이는 각다귀의 모습과 흡사했다.
술을 얼마 마셨을 즈음, 망나니가 손을 흔들며 또 다른 사람을 반겼다. 어릿광대의 앞에 온 사람은 사무라이였다. 무겁게 다문 입은 천금을 건다해도 열리지 않을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문 입과 마찬가지로 허리에 찬 칼을 강하게 잡고 있었다. 사무라이는 칼 손잡이를 꽉 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흡사 빛보다 빠르다는 발도술의 직전, 온 몸의 힘을 꽉주고 있는듯하여 언제 새파랗게 날이 선 칼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게 보일 듯 했다.
어릿광대는 그 틈바구니에 껴서 언제나 그렇듯이 재롱을 피우며 허풍을 떨어댔다. 망나니와 개새끼, 사무라이, 그리고 어릿광대. 이 요상한 그룹의 술자리는 날이 밝도록 계속 되었다. 곧 하얗게 날이 밝아오자 개새끼는 꽁무니를 빼며 집으로 갔다. 제 집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벌써 날이 이리 갔구나 하며 나머지 사람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네, 밥은 먹고 가게."
사무라이가 앞장서 간 국밥집에서 그들은 새벽녘 쌀쌀한 바람을 견딜 온기를 둘렀다. 그리고 어릿광대는 사무라이와 망나니의 배웅을 받으며 마을 밖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세관원은 전 날 보았던 그 우스꽝스런 어릿광대의 표정을 기억해내며 다시 깍듯이 인사를 했다.
"다음에 또 오십쇼!"
어릿광대는 사무라이의 칼집에 있던 것이 무엇인가 궁금하여서라도 다시금 이곳을 오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집을 찾아 돌아가던 이리의 발걸음과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